온 세상이 가상화폐로 시끄럽다. 디지털 문외한이라면 비트코인이니 이더리움이니 빗썸이니 뭐가 뭔지 어지럽기만 하다. 비트코인이 1년만에 2,000% 폭등해 주변에 몇 백만원으로 작게는 수천만원부터 다소 크게는 몇 억을 우습게 번 사람도 있다더라. 이쯤되면 '너도 나도 수 백%의 수익은 우습다던데 매매에 뛰어들어야 하나?' 생각 안 해본 사람이 없을테다. 하지만 막상 거래소에 가입하자니 신규 계좌 발급은 중단됐고, 언론은 정부가 과세 등의 규제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떠들어댄다. 지금 들어가면 늦은 거 아닌가? 오만가지 의문이 고개를 든다. 들어갈지 말지 고민하기 전에 가상화폐란 무엇인지, 왜 오르는지에 대한 분석이 먼저다. 지금부터 알아보자.
가상화폐란?
가상화폐는 가상통화, 암호화폐라고도 불린다. 의미는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블록체인 혁명으로 잘 알려진, 조금씩 다른 암호화 과정을 통해 거래과정을 기록해 장부의 가치를 갖는 디지털 화폐라고 볼 수 있다. 가상화폐로는 시가총액 1위의 비트코인이 대표적이고 위 사진처럼 이더리움, 리플, 에이다, 퀀텀 등 다양한 알트코인(Alternative Coin)이 있다. 원조이자 주식으로 치면 대장주 격인 비트코인은 2008년 사토시 나가모토라는 프로그래머가 개발해 세상에 공개했다. 비트코인 거래는 중앙기구가 존재하지 않는 개인 간 P2P의 형태로 거래기록이 분산 데이터베이스에 남는다. 공급량 또한 정해져 있어 국가에서 그 발행량을 조절할 수 없는 '민간 화폐'다. 국가에서 발행하는 법정화폐가 아니라는 점은 가상화폐에 대한 조작, 인위적인 공급량 조절이나 규제 같은 외부 변수가 없다는 가정 하에 특정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의미한다. 머리 속에 떠오르는 비슷한 성질의 재화가 있지 않나? 실물 자산의 왕이라고 불리는 금이다. 유로존 위기나 911테러 등으로 세계 정세가 불안에 휩쌓일 때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값은 급등을 거듭했다. 가상화폐 역시 민간의 충분한 합의가 있다면, 안전 자산으로 기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에 대한 의견은 후술하겠다.) 그렇다면 작년부터 시작된 상승 랠리도 이해가 간다. 어차피 화폐란 게 인간이 만들어낸 지불 기능을 하는 실물에 대한 교환 수단이라는 점으로 미루었을 때, 가상화폐가 원화나 달러, 유로 같은 법정화폐 혹은 금, 은이나 특정 부동산과 같은 안전 자산으로 기능할 수도 있는 거고, 지금의 가상화폐 열풍은 그러한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가상화폐의 가치 역시 금과옥조처럼 공고해질 거라는 믿음에 기초하지 않을까.
가상화폐의 가치
그래 가상화폐가 뭔지는 알겠다. 사람들이 어떤 기대로 접근하는지도 알겠다. 테크니션이라면 초강세장에서 수익을 내기야 어렵지 않으니 한 번 뛰어들어 볼 법도 하다. 하지만 가치투자자라면 그래서 지금 비트코인은 균형가격을 이루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적정가치는 얼마지? 라는 의문이 고개를 쳐 들 것이다. 비트코인의 가격을 따지기 전에, 비트코인이 정말 화폐로 기능할 수 있는지를 먼저 알아보자.
화폐는 본디 상품이었다. 최초의 화폐는 조개껍질이나 쌀, 금속이었는데 당시 조개껍질은 장신구, 쌀은 식량, 금속은 생산요소로서 화폐이기 이전에 상품가치를 가졌고 휴대의 편의성과 사용의 보편성이 이들을 교환 수단으로 인정하는 합의에 이르게 했을 것이다. 이들은 단순히 상품의 가치를 나타내는 교환수단이 아니라 실용성을 가진 상품화폐라고 할 수 있겠다. 가상화폐가 상품과 무슨 상관이냐고? 위에서 언급한 금이 수천년 동안 안전 자산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의 합의에 선행되어 존재한 금이 가진 실물 자산으로서의 가치 때문이다. 반면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도입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실물로서의 자체 가치가 전혀 없다.
상품가치가 없는 재화가 화폐가 되기 위해서는 교환가치를 가져야 한다. 근대의 지폐는 금본위제 하에 일정량의 금을 보증했다. 즉 금이라는 실물 자산과의 교환을 보증함으로 인해 지폐에 교환가치가 존재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낸 셈이다. 하지만 경제 규모의 확장으로 금이 더 이상 모든 재화를 보증할 수 없게 되고 미국이 패권국의 지위를 다짐과 동시에 금본위제를 폐위하고 달러를 기축통화로 내세우면서 현재의 화폐는 오롯이 인간의 합의에 의해 통용되고 있다. 가상화폐는 특정 국가의 중앙은행에서 발행량을 통제해 화폐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법정화폐와 달리 공급량이 정해져 있어 중앙기구의 인위적인 조작 없이 민간의 합의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고 교환가치를 갖는다는 점, 그리고 블록체인 기술이 해킹, 즉 화폐 발행량의 조작이나 위폐의 유통을 방지해 안정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차세대 화폐로 각광 받고 있는 셈이다. 만약 이대로 세계가 비트코인을 화폐로 인정하기로 합의하고 너도 나도 비트코인을 사들인다면 비트코인은 달러가 차지한 기축통화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만 된다면 개당 2,500만원이라는 가격은 전혀 비싼 가격이 아닐 것이다. 그럼 비트코인이 기축통화의 자리에 끼어들 수 있을까?
달러가 기축 통화로 기능하기 이전에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건 금이다.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자리잡기 위해 금본위제를 어떻게 몰아냈는지는 잘 알려져 있다. 금은 달러에 의해 기축통화의 자리를 뺏겼지만 금 자체가 가진 실물 자산으로서의 가치는 여전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전히 금을 사랑했고 안전 자산으로 남을 수 있었다. 만약 가상 화폐가 지금 같은 추세로 상승 랠리를 반복해 통화로서의 가치를 공고히 한다면, 달러의 기축통화로서의 위치는 자연스레 위협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패권 국가의 길을 걸어온 미국이 이를 두고 볼까. 나는 미국이 어떤 식으로든 가상 화폐에 손을 댈 수 밖에 없다고 본다. 규제는 수요의 감소를 낳을 것이고 자연히 가상 화폐의 가격은 하락 안정화 추세에 접어들 것이다. 개중에 화폐로서 완전히 자리잡지 못한 알트코인들은 화폐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과정에서 분명 곤두박질 칠 것이다. 미국의 욕심을 믿는 합리적인 투자자라면 어떻게 전개될 지 모르는 도박장과 같은 시장에 자산을 몰아 넣을 것이 아니라 때를 기다려 해당 화폐의 풋옵션을 매수하거나 선물시장에서의 레버리지를 이용한 숏포지션으로 어쩌면 마지막이 될 가상화폐 대박의 신화를 노려보는 건 어떨까.